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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ERN PAINTING MAJOR OF MOKWON UNIVERSITY

작은 붓질로 세계를 움켜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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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진로

졸업 후 진로 분야

전문적인 교육을 통하여 길러진 인재들은 다양한 시각예술 관련분야로 진출하게 된다. 개인의 능력과 소양에 따라 순수예술가, 방송사, 언론, 고미술복원, 코디네이터, 분장, 미술치료, 웹 디자인, 캐릭터 산업, 컴퓨터 디자인관련분야, 인쇄기관, 화랑의 디렉터, 미술관의 큐레이터, 미술 경매 등 문화 컨텐츠 분야 전반에 걸쳐 이미 많은 선배들이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창작 미술인으로서 자기성취와 다가올 미래를 위한 자기계발과 성장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고 있다.

졸업생 인터뷰

미술칼럼니스트
미술칼럼니스트

2005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반 고흐 8800만원, 2006년 '메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추정가의 25배인 3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현존 국내 작가로는 해외 경매 최고가 기록이었다. 1년 후 홍경택 작가가 '연필그림'으로 그의 신기록을 깼지만 해외경매시장에서 주목받은 김동유에게 세상과 통하는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무명 설움을 탈출하며 스타작가로 등극했고 작품은 품절사태까지 빚는 '귀한 상품'이 됐다. 2009년 세계적 미술사이트 아트프라이스 보고서에 따르면 김동유는 1945년 이후 출생한 세계 현대미술 작가 중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거래된 작가 100명 중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55위에 들었다.

워낙 말수가 적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처럼 김동유는 진지하고 신중했다. 충청도 사투리가 밴 약간 느린 말투와 순박한 인상으로 '산골 소년' 이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단호했고 아우라 있는 작품 앞에서 힘이 셌다.

―다른 일은 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나.

대학졸업 후 입시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유지를 했다. 다른 일은 할 줄도, 생각도 못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비적응자 같다고나 할까. 주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참고 견딜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 생활은 속된 말로 '똥고집'이 있어야 한다. 고집이 세다고 하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흔들릴 수 있다.

열정은 재능이다. 그게 쌓이면 능력이 된다고 했던가. 김동유는 놀라운 밀도로 응축된 질긴 근성의 작가다. 그의 브랜드가 된 김일성, 박정희, 마오, 존 F 케네디 얼굴 속에 1300개가 넘는 메릴린 먼로 얼굴로 만들어졌다. 박정희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먼로가 슝슝슝 튀어나오며 원래 도상을 해체시키는 신기한 작품이다. 권력과 명성은 모두 다가갈수록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다는 허무함이 배어 있다.

/hyun@fnnews.com 미술칼럼니스트